잊혀지지 않는 이름들, 소년이 온다 - 5월의 상처와 치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얼마 전에서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내 마음을 무겁게 했고,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아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15살 소년, 동호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고, 그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광주의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시위대가 점령한 도청에서 부상자를 돌보며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 애쓰지만, 군부의 무차별 진압으로 인해 그의 삶은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동호의 이야기는 너무도 아프고 가슴 저렸지만, 이 책은 단지 그 소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동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날의 참혹함을 기록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담아낸다. 광주의 비극이 단지 한 소년과 몇몇 이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었는지를 차분히, 그러나 뼈아프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였다. 한강 작가는 광주의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하되, 과장하거나 감정적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아픔을 꺼내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나 역시 그 고통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동호라는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자꾸만 질문하게 됐다. "나는 과연 이와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그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음에도, 동호가 보여준 진실과 정의를 향한 태도는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그 소년의 작은 행동들은 결국 우리가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고통을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과거의 비극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지, 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한강 작가의 문장은 감정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차분하지만 날카롭고, 담담하지만 깊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날 광주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책은 무겁지만, 꼭 필요한 무게다.

우리의 과거를,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무게다.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은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